증거

대한민국 직업군인들의 사고 처리 방식은 매우 전형적이라, 대부분 안 봐도 비디오다. 다음은 S S 밴 다인의 “벤슨 살인 사건” 중에서.

 “이 보게,” 하고 밴스는 아무런 느낌 같은 것은 없는 나른한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일세, 자네가 말하는 정황증거라든가 물적증거가 얼마나 시시한 것인가를 자네에게 실증해 보이고 싶었다네. 플래트 부인에 대해 내가 한 얘기는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잘 짜여져 있다고 생각하네. 이런 것으로써 자네는 그 여자를 유죄로 만들 수도 있다고 확신해. 그러나 자네의 고매한 법률이론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겉만 그럴 듯할 뿐 잘못된 것일세……정황증거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거든. 그 이론은 현대의 민주주의 이론과도 비슷하다네. 민주주의 이론은 선거에서 무식한 표를 긁어모으면 지혜가 생긴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지. 정황증거의 이론은 약한 인과관계를 충분한 숫자만큼 모으면 강한 연결고리가 된다고 하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잖은가?”
“자네가 오늘 나를 이리로 부른 것은 — ” 하고 매컴이 차디찬 목소리로 물었다. “법률론을 강의하기 위해서였나?”
“아니 아니, 천만에!” 하고 밴스는 유쾌한 듯 말했다. “다만 내 해명을 받아들이게 하자면 사전준비부터 해야겠기 때문이었네. 진범에 대한 물적 또는 정황증거라는 것을 나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네. 그런데도 나는 자네가 그 의자에 앉아서 어떻게 하면 처벌받지 않고 나를 고문하고 죽일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누가 진범인지도 확실하게 알고 있다네.”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결론 내릴 수 있다는 건가?” 매컴의 목소리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주로 심리분석에 의해서지 — 각 개인이 저마다 지닌 가능성의 과학이라고 해도 좋을 걸세. 인간의 심리적 본성에는, 그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에게라면, 헤스터 프린의 주홍글씨만큼이나 뚜렷한 낙인이 찍혀 있다네……하긴 나는 호손의 작품은 읽지 않네만, 내게는 뉴잉글랜드 기질이 맞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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